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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피펌) 미키리(이미경) 부회장에 대해 적어봅니다.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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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GFBh660 작성일 20-03-22 18:56 조회 2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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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특히 미국에서는 미키 리 라고 불리죠. 어제 수상발표 한 이미경 부회장 이야깁니다.

 

아시는 분도 있지만, 제가 한때 대기업 영화사업부에 있었어요. 극장운영과 배급을 맡는 팀에 있었는데 1998년입니다.  IMF 직후.

 

당시 영화판이 어땠는가... 그야말로 충무로 노친네들이 세력다툼하는 고리타분의 극치였습니다. 

 

극장은 목 좋은데, 그러니까 서울같으면 종로 3가, 다른 지역은 보통 명동으로 불리는 그 지역 번화가 또는 역 앞에서 손쉬운 장사를 하면서 길게는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낡은 시설에 투자도 없이 그야말로 현상유지에 급급했죠. 

 

극장이 못들어가는 층고에 극장을 구겨넣어서 앞사람이 스크린 반 가리고, 

무리하게 구겨넣은 좌석 때문에 무릎이 앞좌석에 닿고, 

스크린은 하도 오래 안 닦아서 부옇고 영사기는 맛이 가서 번번히 사고 나고, 

돌비 음향이 뭔지 영사기사가 모르고, 센터스피커가 찢어져서 대사가 잘 안나와도 모르고, 

매점은 보통 극장 사장님 친인척이 운영하면서 봉지팝콘 바가지 가격에 휙 던지고, 

위생 안좋은데는 쥐도 가끔 나오고, 

스크린 옆에는 비상구 불이 계속 켜져서 시선 뺏고, 

영화 끝나면 나오는 길은 두 사람도 못지나갈 좁아터진 계단이고...

 

이건 디피 아재라면 다들 기억하실 이야기지만, 

관객들이 잘 모르는 제작 배급 문제는 더 심각했습니다. 

 

서울극장 곽회장 라인으로 배급을 타면 그나마 상영이 되고, 아니면 아예 극장조차 못 잡고 관객을 만나기조차 힘든 독점구조에 공공연히 뒷돈이 오갔고, 

극장과 영화사는 불투명한 경영 때문에 매번 수입 정산 때문에 싸우기 일쑤였고, 

제작자들은 제대로 된 투자자를 잡지 못하고 충무로 전주들 눈치만 보는 식이었죠. 근데 그 충무로 전주들이 노친네들이라 절대 과감한 시도, 젋은 감독에게 기회를 안 줬습니다. 

그야말로 아사리판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러다보니 당시 최고의 흥행감독이던 강우석 감독도 서울극장에 회사 사무실을 두고 거의 매일 곽회장에게 가서 문안인사 드리고 굽신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구요. (제가 직접 본 상황)

 

이미경 부회장이 없었다면...

 

아마 2005년 정도에는 멀티플렉스가 누군가에 의해 자리를 잡았겠지만 그 전까진 저런 눈뜨고 볼 수 없는 극장들이 여전히 성업했을 것이고, 누군가가 용감하게 멀티플렉스를 해도 아마 기존 극장주들의 견제에 제대로 살아남기 어려웠을 거구요 (실제  cgv 강변의 성공에 용기를 얻어 충무로 토착자본이 동대문에 열었던 멀티플렉스가 서울극장의 견제로 영화를 제대로 걸지 못했었죠)

 

구태의연한 투자자, 충무로 전주들은 박찬욱이나 봉준호 같은 이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구시대 충무로 출신의 고리타분한 연출자들에게만 자본을 댔을 거고,  

박찬욱 감독은 영화 못지않게 잘하시는 평론으로 근근히 먹고 사셨을 거고 (저는 그분의 책을 영화보다 먼저 접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첫 영화 플란다스의 개 같은 소품들을 근근히 만들며 저같은 인디영화 매니아들에게만 인정받으며 다음 영화 투자자를 찾기 위해 애쓰고 계시겠죠. 

 

이미경 부회장이 CJ엔터를 만들어 대중적인 작품 못지않게 작가들의 작품에 대규모의 투자를 하고, cgv를 만들어 멀티플렉스 시대를 열지 않았다면 한국영화는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습니다. 

 

멀티플렉스가 다양성을 질식시킨다, 시설이 부족하다 하지만, 당시 극장들의 수준을 생각해보면 CGV가 우리나라 극장의 전체적인 수준을 몇 배 올려놓았고, 영화관에 오는 이들을 크게 늘려놓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아무리 CJ가 엄한 작품들을 만들거나 오락성에 치중한 대작을 주로 만든다고 해도 박찬욱과 봉준호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비겁한 다른 대기업들, 삼성, 엘지, 현대... 다들 IMF를 맞자마자 문화사업에 투자한다던 방침을 다 바꾸고 정리해버리기 바빴는데, 상대적으로 훨씬 소규모이던 제일제당과 동양이 그 힘든 시기를 버티고 결국 한국영화의 융성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미키 리의 공이 과보다는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movie&wr_id=2438317

원글 가보면 댓글도 재밌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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