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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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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효연 (114.♡.195.215) 작성일 20-02-26 17:44 조회 29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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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나이에 진짜 왕이 되다 - 세조가 세상을 떠나자 둘째 아들인 예종이 왕이 되었어요.
첫째 아들인 의경 세자는 어린 나이에 죽었기 때문이였어요. 하지만 예종의 건강이 좋지 않아 어머니인 정희 황후가 수렴청정을 했지요.
수령청정은 어린 왕 대신 왕실의 여자 어른이 나랏일을 돌보는 것을 말해요.
그러다 예종이 세상을 떠났어요. 몸이 건강한 둘째 아들인 잘산군에게 왕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13살 나이에 왕이 되었어요.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성종은 훌룡한 왕이 되기 위해서 책을 많이 읽고 배웠어요.
어질고 총명했던 성종은 정희 왕후의 수렴청정을 거치면서 차근차근 왕의 덕목을 배웠어요.
  이후 성종이 20살이 되던 해, 정희 왕후는 수렴청정을 그만두었어요. 그리고 마침네 성종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지요.
세조 때부터 높은 벼슬을 해 오던 '후군파'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자, 성종은 새로운 정치 세력을 끌어들였어요.
이때 등장한 정치 세력이 '사림파'예요. 사림은 선비들의 무리라는 뜻이지요.
성종 때 중앙의 조정에 진출한 사림 세력은 영남 출신의 김종직과 그의 제자들이었어요. 이들은 훈구 세력의 잘못을 비판하며 정치를 바꾸려 했답니다.
  성종이 펼친 다양한 일들 - 성종은 유학 교육 기관인 성균관을 발전시키는데 힘썼어요.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펴내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였어요.
성종은 왕실의 세 어른을 위해 창경궁을 지었어요.
성종의 어머니 소혜 왕후는 인수 대비라고도 불리는데, 여성을 교육하는 책인 '내훈'을 펴냈어요.
성종은 1483년 창경궁을 완공하여 이들이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했어요
  성종이 처음 혼인했던 한명회의 딸은 자식을 낳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어요. 그래서 성종은 후궁이었던 윤씨를 왕비로 삼았지요.
윤씨는 왕자를 낳았지만 질투가 심하고, 무례한 행동을 하는 등 인품이 좋지 않았어요.
그러다 윤씨가 성종의 얼굴을 할퀴어 손톱자국을 내자, 성종은 화가 나서 윤씨를 왕비의 자리에서 쫓아내고 사약을 내렸어요.
그런데 윤씨가 낳은 아들인 연산군이 왕이 된 뒤, 어머니인 폐비 운씨의 일을 모두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윤씨를 왕비 자리에서 몰아내는 데 관여했던 신하들에게 벌을 내리고 목숨을 빼앗았어요. 이 일을 '갑지사화'라고 해요.
연산군이 날이 갈수록 포악해지자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강화도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어요.
느낀점 -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 열심히였던 성종이 존경스럽고,
효심과 노력이 참 대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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